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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라이프/고민

이 행복의 기원은 커피인가, 날씨인가 아니면 바깥 풍경인가

황금같은 재택 금요일 아침, 회사로부터 받은 프렌츠 프레스에 회사로부터 받은 원두를 갈아 커피를 들고서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아,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매일 먹는 네스프레소 보단 카페인이 약했지만 원두가 굉장히 특이한 것인지 맛이 독특하다. 프렌치 프레스가 그렇게 세게 내려지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자꾸만 홀짝이게 되는 맛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마실 수 있었다.

회사 본사가 시애틀이라 그런지 커피도 시애틀에서 온 것 같다

 
그리고 문득, 이 행복이 커피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파란 하늘이 펼쳐진 샌프란시스코의 날씨인 것인지 아니면 오렌지색 지붕이 예쁜 기숙사 때문인가 궁금해졌다. 커피를 쥐고서 바깥 풍경을 보는 습관은 한국에서 혼자 살 때부터 쭉 해오던 것이었는데 그때의 감정은 매번 달랐다. 오랜간만에 내가 살았던 오피스텔들의 바깥 풍경이 다시 보고 싶어서 외장 하드를 뒤지고 구글 클라우드를 뒤졌는데 쉽사리 찾아지지가 않는다.


성북동에 살던 시절엔 바깥 풍경이랄 것이 없었다. 언니와 함께 지냈던 방, 오빠의 군대 휴학으로 혼자 썼던 방, 그리고 거실의 창문 모두 불투명 유리거나 베란다로 가려져 있어 이런 경치 감상이랄 것이 없었다. 그리고 청라로 나의 둥지를 옮겼을 때, 비로소 바깥 풍경을 보면서 사색을 즐기는 취미가 생겼다. 

겨우 찾은 청라 오피스텔 뷰

바깥 풍경이 제일 좋았던 곳을 꼽자면 물론 마곡나루의 보타닉 오피스텔이었다. 집에서 서울 식물원도 보이고 건물 바로 앞이 지하철 역이라 아무런 건물도 없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이 집에서 보낸 시간이 굉장히 길었기 때문에 추억도 많이 쌓인 집이었다. 수술 직후에 터진 코로나여서 어디 놀러 다니지도 못하고 커피 한 잔 내려서 창 밖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너무 심심해서 '아기를 낳으면 덜 심심할까?'라는 생각했던 그런 시기랄까.
 
그 다음에 이사갔던 오피스텔은 14층 건물에 13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피스 뷰였다. 햇볓은 많이 들어왔지만 이렇다 할 풍경은 없었다. 그리고 미국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마주했던 풍경.

구름이 많긴 해도 이뻤던 바깥 풍경

이런 풍경에 아치형 창문은 멍때리기 딱 좋은 풍경이었다. 크게 높은 건물이 없는 Inner Sunset이라 그런지 누가 나를 밖에서 볼 걱정도 딱히 없었고 높은 침대 덕에 경치를 풍기기에 참 좋은 방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사는 건물.

Lone Mountain 꼭대기도 살짝 보인다

거실은 기숙사 뷰지만 내 방 침대에 누우면 나무 덕분에 자연스러운 프라이버시 보호와 하늘 멍때리기도 딱 좋은 풍경이다.

그러다가 오늘의 커피 한 모금에 나는 행복의 감정을 느꼈다.


 
인턴십 3주차, 바쁘면서도 바쁘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 11시에 매니저와 하는 SRE Certificate 미팅은 굉장히 재밌다. SRE 업무를 이렇게 진지하게, 아니 나의 커리어에 있어 상세한 분야를 정해서 파고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매일 오전 11시에 매니저와 어제 들었던 강의 내용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고, 질문이 있으면 자유롭게 물어보고 매니저가 아는 선에서 나에게 그 지식과 인사이트를 공유해준다. 오늘은 SRE 분야의 AI에 관해서 질문을 했는데 나의 세상에서는 좁게 바라봤던 SRE 분야에서의 AI를 매니저를 통해 더 많은 부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또 회사에서 점심 스시 회식이 있었고, 두 시간의 점심 시간을 지나 한 시간 정도 업무를 봤더니 Tirsty Thursday가 되었다. 그래서 맥주 한 병 들고서 옆 팀 매니저와 인턴들이랑 함께 한 시간 수다를 떨다가 퇴근 시간이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아직은 갓 시작한 인턴들이다 보니 인터뷰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뤘는데 인터뷰이가 인터뷰어에게 이것 저것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고 또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게 또 그렇게 재밌다. 우리도 세 시간짜리 인터뷰 보느라 진이 빠졌지만 인터뷰어들도 인터뷰를 다 보고나면 랭킹 미팅까지 해야해서 굉장히 바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여러번의 미팅으로 업무에 있어서도 꽤 나은 진척률도 보였고 다사다난한 한 주 였지만 나름 내 위치에서 많은 것을 이룬 주였다. 매니저가 워낙 칭찬에 후해서 내가 하는 일이면 부둥부둥 해줘서 춤 추면서 키보드 두들기고 있달까. 막막했던 업무도 다음 주에 미팅을 한 두 번 더 잡으면 끝날 것 같고, 최종 보스와의 미팅까지 하고 나면 인턴으로서의 나의 첫 업무도 끝이 날 것 같다. 정말 바쁜 팀인데 그래도 그 사이 사이에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월요일 아침 9시에 미팅 잡아버리기ㅋ_ㅋ


샌프란시스코 흔하지 않은 따뜻한 날씨도, 과일항이 묻어나는 향긋한 커피도, 이룬 것이 많았던 한 주도 다 이 금요일 아침의 행복에 지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커피가 선사하는 약간의 두근거림이 오늘 일어날 매니저와의 미팅 때문이었을수도, 안개가 가신 샌프란시스코의 하늘 풍경이었을수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 중요한 것은 더할 나위 없다는 것. 지금 이 감정이 지속되기를, 무너지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감정이기를 바라며 글을 남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