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디 짧았던 사흘 간의 여름 방학을 보내고 5/20부터 인턴십을 하고 있다. 작년에도 인턴십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랐다. 미국 석사 시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시기의 여름 방학, 어쩌면 풀타임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는 인턴십이었기에 어떻게든 잘 해내리라 마음을 먹고 첫 출근을 했다.
한국에서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사 생활을 했다지만 다시 경력을 리셋해서 인턴십을 한다는 것이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선배님, 대리님 소리 들으면서 지냈던 시간을 뒤로한 채 다시 신입 시절 빠릿빠릿한 시절로 돌아가 무엇이든 다 흡수해 버리겠다!라는 마인드를 장착해야 했다.
아쉽게도 나의 직속 매니저는 아직까지도 실제로 뵌 적은 없었지만 나의 멘토, 매니저의 매니저(매매니저)가 유타에서 3일 출장을 와서 나의 온보딩을 도와주셨다. 처음에 매니저가 '멘토랑 매매니저가 너 출근하면 사무실에 있을 거야~'라고 하셨는데 업무차 우연히 시기가 겹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든 생각은 나도 만나고 일도 하고 멘토의 첫 산호세 오피스 방문 등 겸사겸사해서 왔다는 것? 뭔가 그들의 출장에 내가 이유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되게 환영받는 느낌이었다.
매매니저 덕분에 회사 곳곳의 서버실도 들어가봤는데 나의 티아이 첫 출근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동기들이랑 다 같이 먼지 털고서 서버실, 모니터링실 회사 곳곳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이런 경험을 하는 게 재밌었다. 최대한 매매니저가 하는 이야기를 다 받아 적으려 노력했지만 사실 지금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잘 기억은 나질 않는다(죄송). 이런 작은 추억 하나하나가 모여서 회사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먹을게 가득한 탕비실, 탁구대, 게임기, 맥주 냉장고까지!! 한국 회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사무실에서 세 달을 지내게 되어 설렘 가득한 첫 주였던 기억이 가득하다.
그렇게 그 주 수요일, 나의 첫 업무를 받았고 4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걸 꼭 잘 해낼거야!'라는 생각보다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일단 업무 스케일 파악, 자료 조사, 세부 계획 수립부터 빠르게 했다. 일단 일을 받은 그날이 멘토와 매매니저랑 대면으로 만나는 마지막 날이었기에 최대한 힌트를 많이 받아야 했다. 이제 또 유타로 돌아가면 고개 돌려서 질문하기가 어려워지므로 질문을 쥐어짜서 최대한 많이 했던 것 같다. 시각 자료 만들고 보고하고 피드백받고 엑셀 만들어서 회의 주최하고 피피티 만들어서 발표하고... 어떻게 보면 코드 한 줄 작성 안 하는 나의 인턴십 첫 업무였지만 내가 일하는, 또 일하게 될 팀의 전반적인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업무였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신나게 첫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매니저의 칭찬과 설득도 큰 몫을 차지했다. 일을 줄 때부터 왜 이 프로젝트를 고민하게 되었는지, Tech Debt 개념도 설명해주시면서 이 일이 얼마나 팀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해 주셨다. 솔직히 초반에 일을 받았을 때는 '시키면 해야지'라는 마인드가 가득한 한국인이었기에 별생각 없이 일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참 중요하단 느낌이 들었다. 너의 시간과 노력이 팀에 도움이 되고 다른 팀원들에게도 정말 도움이 된다고 감사함을 표시하는 매니저라니...!
그렇게 첫 프로젝트를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매매니저 앞에서 PPT 발표도 했다. 티켓도 끊어서 Peer Review 끝에 운영 서버에 나의 프로젝트가 배포되었다. 나의 첫 티켓에 다들 밈으로 축하해주고 부둥부둥해주는 경험을 하고 나니 정말 이 팀에 일환이 된 것 같고 인턴십의 큰 산 하나를 넘은 것 같아서 행복한 날이었다. 그날이 또 마침 루씨랑 3주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기의 첫날이었다 보니 루씨 앞에서 기쁨을 맘껏 표현했던 것 같다.
첫 프로젝트 완료 후, Mid-Review에서 매니저의 극찬과 함께 힘을 얻어서 또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코드를 조금은 짜는(?) 프로젝트가 되었는데, 첫 프로젝트와의 달랐던 점이 있다면 팀원들이랑 좀 더 친해졌다는 것? 산호세 오피스에 유일하게 나와 함께 출근하는 동료와도 겹치는 미팅이 있으면 꼭 미팅룸에 가서 같이 하고 미팅 전후로 수다도 많이 떤다. 그 분이 나보다 탁구를 더 잘해서 얼른 더 친해져서 탁구도 배워야 할 것 같다.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Thirsty Thursday에도 함께 가서 맥주 한 잔 같이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도 한결 이 회사가 편해졌구나, 이제는 이 환경과 사람들이 익숙해지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이제 두 번째 프로젝트도 Staging, Prod에 배포만 남은 이 시점에서 나의 인턴십을 떠올려보니 배운 것도 많고 이룬 것도 많은 시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테스트가 까다로워서 완벽하게 해냈다는 느낌을 받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았는데 그것 마저도 매니저가 파악하고 언급해 주는 부분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았달까. 내 성향 자체가 워낙 사람이 좋으면 모든 것을 좋게 보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인턴십이 끝날 때까진 이 팀에 배정받아서 매니저에게 일을 배웠다는 사실에 굉장히 행복감을 느끼며 마무리할 것 같다. 역시 난 인복이 많은 러키걸~
다음 주면 시애틀 본사에서 열리는 Intern Week가 열린다. 60여 명에 가까운 인턴들이 한데 모여서 네트워킹도 하고 C level들의 강연, 보트 세일링까지 너무 기대되는 한 주가 기다리고 있다! 나의 온보딩을 도와줬던 매매니저와 멘토까지 또 유타에서 시애틀에 온다고 하니 맥주 한 잔 하면서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 채워와야겠다.
4년 4개월의 회사생활, 그리고 다시 리셋된 나의 커리어. 어쩌면 다시 0으로 돌아간다는 게 억울하기도 속상하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들 앞을 향해 나아갈 때 나는 리셋이라니.
그래도 이렇게 인턴십을 두 달 정도 해내고 나서 드는 생각은,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이 더 풍요롭다는 것이다. 4년 넘게 회사생활을 했던 덕분에 나에게 주어진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사람을 설득하고 내가 한 일을 설명하고 또 일을 해내는 방법은 절대 리셋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주 열리는 1:1 때마다 칭찬 가득한 매니저 덕분에 또 기분이 좋아져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남은 이틀, 나의 프로젝트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90%는 완료되었기 때문에 뿌듯함은 가져가야겠다. '내년에 오면'이라는 미래 약속을 항상 하는 매니저의 말을 믿어보며 남은 마지막 한 달의 인턴십도 열심히 잘 해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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